짱식이의 한

공생불가존재 (2024)

짱시깅 2024. 12. 18. 19:54

 
 

공생 불가 존재

30203 김가현
 
 

 
 때로는 희미하기도 하면서, 또 때로는 선명하기도 했다. 그 순간들 속에서 흐릿했던 기억들은 마치 환하게 불이 밝혀지듯, 폭죽처럼 터지곤 했다. 쏟아지는 빛과 함께 스파클처럼 흩어지는 잔불꽃들. 그러한 기억 저편에는 늘, 차가운 부품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잔혹하게 파훼 된 시체처럼. 오래전부터 전류가 흐르지 않는, 목숨이라는 것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듯한. 그런 로봇의, 나와 똑 닮은 그것의 모습… 
 
이런 기억들이 때로는 떠오르곤 했다.
 
 
 
#1 발단
 
 
“안녕하세요. 저는 이선우입니다.”
 
 
 이선우는 놀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자 한번 생각해 보자. 나와 닮은 사람이 이 세상에 몇 명이나 있을까. 검은 눈에 검은 머리. 똑같이 맞춰지는 눈높이와 매일 거울로서 보았던 얼굴. 아, 정정한다. 나와 ‘닮은’의 정도가 아니다. 그러니까… 이건 정말로 이선우였다. 이선우와 똑같은 모습이, 어떠한 차이점도 없는, 그냥 ‘이선우’라는 존재, 그런 존재가지금 눈앞에 있다. 이선우의 눈앞에. 이선우는 생각을 멈췄다. 정확히는 생각이 이선우의 의지에 앞서 먼저 멈춰졌다. 도플갱어라던가, 나와 동일하게 생긴 또 다른 존재의 출처는 주로 기이한 현상과 괴담이었다. 그런 점에서 오는 소름 끼치는 이 감각과, 무엇보다도 알 수 없는 들이닥친 상황에서 오는 혼란이 머리를 쾅쾅 때리고 있었다. 
 
 이선우는 문고리를 잡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말이 나오지 않았고, 몸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멈춰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눈앞의 또 다른 이선우. 자신을 이선우라고 소개한 그 존재도 덩달아 멈춘 채, 이선우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 경직된 침묵이 도통 깨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눈앞의 존재는 다시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당신의 복제 로봇입니다. 당신의 SNS 계정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어요.”
“아니. 잠시만, 뭐?”
 
 얼어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깨졌다. 얼빠진 표정을 하는 이선우와, 그런 이선우를 보는 이선우. 단연코 방금 깨진 것은단순 분위기만은 아니었다.
 
이선우. 로봇 이선우가 아닌 원조, 오리지널 이선우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이선우의 삶을 세 단어로 요약하자면, ‘지루함’ ‘평범함‘ ’조용함‘ 정도가 적당하다. 이 정도면 대강 감이 올 것이다. 그러니까 이선우는 특별히 두드러지는 재능도, 남다른 매력도 없는 사람이었다. 말수가 적고, 수려한 외모도 아닌, 그저 그런 아이로 수년간을 살다 그저 그런 어른으로 진화한 후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 평범함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걸 이선우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삶을 바꾸려 한 적은 없다. 왜냐하면, 이 평온함이 좋았기 때문이다.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그에게는 더 편했다.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라고 생각해 왔지만, 아주 가끔, 정말 아주 가끔은… 조금은 심심했다. 굳이 대놓고 말하자면, 외로웠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타인도, 자신도 주목한 적이 없었다. 도태되는 자신을 느끼면서, 서서히 가라앉는 기분으로 세상을바라보았다. 마치 수면 위에 비친 사람들만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처럼. 이선우의 인생은 그런 식이었다.
 
하지만, 이런 우울한 이야기가 이대로 끝나지는 않는다. 어둡던 그의 일상에도 작은 불빛 하나가 나타나게 되는데, 그 불빛은 다름 아닌 SNS였다. 인스타, 트위터, 페이스북… 세상에는 여러 SNS가 있지만, 이선우는 살짝은 비주류의 것을 한다. 바로 ‘빙넷’ 이다.
 
 빙넷은 한때 소셜미디어 어플의 시초격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시대의 흐름에 밀려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앱이다. 초창기에는 그 독특한 디자인과 개성으로, 또 하나의 거대한 유행에 이끌려 많은 사람들이 몰렸지만, 잦은 오류와 늦은 업데이트 때문에 결국 사람들에게 외면받았다. 다들 새롭게 유행하는 다른 미디어 앱으로 가버리며, 지금은 소수의 유저들만이남아 소소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선우도 그 소수 중 하나였다.
 
 
 이선우는 빙넷에서 가장 오래된 유저 중 한 명이다. 처음 설치한 이유는 ‘온라인으로도 친구를 사귈 수 있다.’ 는 소개 문구에 끌려서였다. 친구 한번 없고, 친구 한번 얻고자 했던 이선우는 홀린 듯이 앱을 깔았다.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그저 사람들의 대화를 구경하기만 했다. 하지만 타임라인 속 활발하게 소통하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도 그 안에 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어느 날 수줍게 올린 구름 사진 하나가 100개의 좋아요를 받자, 이선우는 난생처음 어떠한 설렘을 느꼈고, 어쩌면 여기라면… 하는 생각과 함께 빙넷에 말뚝을 박겠노라 마음먹었다. 실제 그 말뚝은 현재도 건사하게 있으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이선우는 가끔 게시물을 올리지만, 다만 이제는 좋아요가 2개만 눌릴 뿐이다. 그것도 늘 똑같은 두사람의 좋아요가.
 
어쨌든, 이선우의 인생과 빙넷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한 페이지로 설명될 만큼 특별할 것 없는 삶. 잊혀진 빙넷. 그런데 이 두 가지가 다시금 떠오르게 된 이유는…
 
“그러니까, 내가 SNS에 쓴 글을 모아서 당신, 그러니까…. 로봇을 만들었다는 거죠?”
“네. 맞습니다.”
“왜요?”
“그건 저도 잘…”
“허…”
 
 진짜 궁금했다. 대체 왜? 이선우와 로봇 이선우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사람 이선우와 로봇 이선우는 기이할 정도로, 서로에게 있어 그 자체였다. 왜 이런 기술이, 굳이 자신을 복제하는 데 쓰였을까. 자신의 삶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잘 아는 이선우였다. 그런데 눈앞의 존재는 마치 그게 아니라는 듯 얘기하는 것 같았다.
 
“아니, 진짜로. 숨기지 말고 말해봐요. 저 진짜 무섭거든요…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당신을 만들었는지, 육하원칙으로 설명해 주세요.”
 
 문득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자신과 똑같은 복제 인간이 본체의 장기나, 임신을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 그들은 처음엔 자신의 존재 이유를 몰랐다가,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되자 본체를 죽이고 자신이 그 사람으로 살아가는 내용이었다.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저는 프로젝트 용도로 만들어진 로봇이고, 선우님이 빙넷에 작성한 게시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되어 완성됐어요. 저를 만든 박사님은 빙넷의 제작자이시고요. 그런데 왜 저를 만드셨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정말로요. 프로젝트가 종료된 후, 박사님은 제 연구 관련 기억을 전부 삭제하시고는 선우님 집으로 가라는 마지막 명령만 남기셨어요. 본래 프로젝트가 끝난 로봇은 폐기되는 게 원칙이지만, 외적으로도 그렇고 또 제 안에 내재된 데이터들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선뜻 폐기하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현재 저의 권리는 이선우님께 이미 양도된 상황이고요. 그러니까 폐기하실지 마실지는…”
 머뭇거리던 로봇 이선우는 결국 그렇게 말을 끝맺었다. 사람 이선우는 말없이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이 모든 일이 현실인지, 아니면 그냥 꿈인 건지부터 따져야 할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을 그대로 납득하기에는 로봇의 눈빛은 너무도 인간적이었고, 그 눈빛이 마치 자신을 향해 어떤 대답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럼, 내가 뭘 해야 하지?”
이선우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로봇은 대답하지 않았다. 
 
 
 
 
#2 전개
 
 
[그게 말이 돼?]
[진짜야?]
 
 
                                     (사진)
 
[헐….]
 
[그래서?]
[어떡할 거야 이제?]
 
이선우는 어떠한 답변도 선뜻 하지 못한 채 긴 한숨만 내쉬며 텍스트를 바라 보았다. 같이 채팅을 나누는 상대방은 냠냐미. 이선우와 빙넷에서 만난지 5년차 친구이다. 본명도 모르고 생김새는… 어쩌다 우연히 알았고. 주로 먹거리, 게임 관련사진들을 올린다. 처음에는 지나가다 가끔씩 게시물에 좋아요만 누르는 사이였으나, 점차 사람이 줄고 빙챗을 나눌 사람이 서로밖에 없어지자 자연스레 친해졌다. 
 
 
 
[써누 어때?]
     
                                      [뭐가]
 
[선우 / 선우 로봇은 너무 헷갈리니까]
[걔를 지금당장 뭐 어디 갖다 버릴 것도 아니고]
[부를 이름은 있어야할 거 아니야]
        
                                      [걔를 써누라고 부르라고?]
 
[웅]1
 
 
마지막 채팅은 굳이 들어가 읽지 않았다. 알람으로만 확인한 뒤, 핸드폰 화면을 꺼버렸다. 그래 이름… 이름 있으면 좋지. 근데 쟤한테 내가 이름 같은 걸 붙여줘도 되나. 하나의 인격체로 취급해도 되는 거야? 그동안 이선우는 관련 기사를 검색하며 시간을 보냈다. 복제 로봇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려 했지만, 나오는 건 죄다 괴담이나 음모론뿐이었다. 결국 방법을찾지 못하고 냠냐미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빙챗을 보냈다. 딱히 답을 얻은 건 없었지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나니 상황이 조금씩 현실감 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문득 이선우는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봤다. 아까 로봇 이선우가 방을 둘러봐도 되냐고 물었을 때, 이선우는 대신 방 밖으로는 나오지 말라며 허락했다. 사실상 방에 가둔 셈이지만, 로봇 이선우는 별로 신경 쓰지도 않고 방 안을 유심히 구경하고 있었다. 빙넷에 내 집 사진을 올린 적은 있어도, 침대방을 올린 적은 한 번도 없는데… 그래서 저렇게 신기해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자, 저 로봇에 대한 경계심이 누그러지나 싶다가도… 다시금 꺼림칙해졌다. 
내 SNS를 기반으로 학습된 저 로봇이… 마치 지금도 새로운 데이터를 학습하고 있는 것 같아서.
 


 

< 인간형 로봇 폐기하는 법 / 인간형 로봇과 가정용 로봇에도 차이가 있을까? 알아두면 좋아요! >

 
안녕하세요!! 오늘은 인간형 로봇을 폐기하는 법에 대해서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요새 다양한 형태의 로봇이 개발되고 있죠~?? 일상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로봇청소기, 서빙용 로봇이 다였던 게엊그제 같은데… ㅋㅋ 요즘은 동물형 로봇도, 인간형 로봇도 보이네요.
단순 편리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로봇들이, 그걸 넘어 생물의 형상을 모방하고 학습되고 있는 게 참 신기해요… 특히 인간형 로봇은 원래는 정부 차원에서 병원, 소방서, 군대에만 보급되었으나 최근에는 가정용으로도 쓸 수 있도록 풀렸다죠???
물론 가격은… ㅎㅋ 가정용인지 귀족용인지^^ 저는 평생 못 살 것만 같은 가격이네요… ㅎㅎ 그래도 개인적으로 인간형로봇은 기능이나 생김새나… 여러모로 관심이 많이 가서 푹.풍.검.색. 을 해보았는데요 ㅋㅋ
그래서 오늘은 정보 공유차?! 이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우선 인간형 로봇 폐기법!! 아마 제목을 보시고 누르신 분들이라면 제일 궁금해하실 부분이네요 ㅋㅋ
 
최근 기사가 떴었죠! 인간형 로봇을 분해해서 그냥 부품소에 처리를 맡겼다가 벌금형을 문 사람이요! 와~~~ 저는 그게법적으로 문제가 되는지도 몰랐어요.
다행히(?) 그 로봇이 공식적으로 고장(정확히는 시스템 오류+복구 불가!!) 상태라고 사전 판정을 받았었고, 개인 구매 상품이라 벌금에 그쳤으나아… 만약 그게 정상 상태+정부 소속 로봇 이었다면 징역까지 살 수도 있다네요 ㄷ ㄷ (관련 법기사 첨부합니다!!!)
그러니 미리 폐기법은 알아두는 것이 좋겠죠?!
이젠 진짜 말씀드리겠습니다!!! 폐기법은요~~~
1. 공식 정부 봇사 홈페이지에 들어간다!
2. 인간형<<< (중요 / 일반 로봇형으로 신청하시면 안돼요!! 괜히 돈 버리시는 겁니다ㅠㅠ / ) 로봇 폐기처리 신청!!
3. 주소를 입력한다~~~
4. 후에 가지러 온 기사님께 맡기면 끝!!!
 
 
아주 간단하죠~~~??? 일반 로봇형들은 주인이 직접 돈을 내고 폐기처리를 해야 하는데(그래서 불법 투기가 많죠…ㅠㅠ솔직히 돈좀 내려줬으면…ㅋㅋ)
인간형 로봇들은 무료!! 공짜!!! 입니다~~~ 그 이유는 추측하건대…
동의서 조항 밑에 슬~~쩍 있는
다음과 같은 폐기형 로봇은 연구용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
이거 때문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인간형 로봇은 아직은 좀 귀하니까~~ 폐기형도 활용하기 좋을 것 같으니 저러는듯요^^ 저덕에 인간형 로봇 폐기는 공짜입니다. 후하하. 그러니까 그 로봇을~~~… 혹여나 정말 은밀한 사적<<ㅋㅋ 으로 쓰셨다면?! 꼭 폐기처리 하기전에 데이터 삭제 하시길 바랄께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름^^
 
아무튼 오늘은 요러케 요로코롬 인간형 로봇 폐기법에 대해서 알아 보았는데요~~~ 정부에서 직접 개발하고, 관리할 때에는 잘 몰랐지만… 이제 여러 기업에서도 슬슬 판매하기 시작하고~ 대중화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런모르면 벌금형!! 인 점들 미리 알아두시면 조으시겠죠??~~~ 제 티스토리에 더 많은 이야기가 있으니 보시길 바랄게요^^. 다음 번에는 실험용 동물 로봇의 기능성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미리 구독 눌러두시고^^ 그럼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선우는 끝난 글을 밑으로 주욱 스크롤 했다가 다시 위로 올렸다. 혹시나 해서 인간형 로봇 폐기법에 관해 검색해 본 건데, 괜히 마음만 더 심란해졌다.
 글에 따르면, 아무 문제 없이 합법적으로 폐기하려면 정부에 맡겨야 한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저 연구용으로 활용될 수있다는 문장이 너무나도 찝찝했다. 흰색 커스텀으로만 된 인간형 로봇만이 나와 있는 지금에, 저렇게 피부 질감이며 목소리나 홍채 등이 인간과 똑같은 저만한 로봇은 당장 연구원들이 뜯어서 분석하려 할 것이다. 나와 똑같이 생긴 로봇을. 그렇다면 저걸 갖고 있는 나도… 물론 문제가 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부품소에 맡겨야 하는데, 그것 역시도 좀. 애초에 저런 로봇을 남들에게 보여줘도 되는가? 라고 생각하면 이선우는 당연히 NO였다. 이를 어쩌냐고… 뭐가 됐든 폐기하는 방법을 찾더라도 문제였다. 저걸 진짜 폐기처리해?  아무튼 이건 정말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보니까개발자 그 사람이 나한테 떠넘긴 거였네… 
‘주인의 권리가 양도됐다.’ 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본 이선우는, 고민 끝에 방문을 다시 열었다.
 
 
#3 위기
 
써누와 만난 지 약 한 달이 지나고 다시 말하건대, 그러니까 이선우가 걱정했던 것만큼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이선우는 로봇, 너 등의 호칭의 한계를 느끼고 써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때부터 자연스레 서로 말도 놓고, 같이 자고, 같이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써누는 로봇이라 음식을 먹지는 않았다. 충전형이라는 건 알았지만, 코드가 보이지 않아 구체적으로 어떻게 충전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선우가 식사할 때면 써누는 옆에서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어쩔 때는 함께 게임을 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함께 산책을 나가기 시작했다. 써누가 부탁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선우는 써누가 늘 집안에만 있는 것이 답답할까 봐 마스크와 모자를 씌워 데리고 나가곤 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써누가 정말 이선우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더 단순하고 솔직해서, 이선우는 친구가 생긴 기분이었다.
 
 물론 아직도 가끔 써누의 얼굴을 정면으로 볼 때면 역시나 어색하고 위화감이 들었으나, 서로 취향도 지식수준도 똑같으니 대화가 잘 통했다. 서로가 서로의 결점을 채워주어 충만한 느낌의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아무튼 이선우는 써누를 제법 ‘인간’ 취급하는 걸 지나, 쌍둥이 동생 정도로 생각하는 경지에 이른 참이었다.
 
“어? 선우 아니야? 오랜만이다 야.”
“하연이?”
 
그러니까 정말로… 그러려던 참이었다. 이선우가 자주 산책하던 공원에서 남하연을 만난 것은 그저 우연이었다. 당연하게도 이선우를 닮은… 아니 그냥 똑같은 써누를 남하연이 자신으로 착각한 것도, 납득 가능한 우연이었다. 그렇지만 써누도 남하연을 알아보고, 반갑다는 듯이 인사하는 이 장면까지도… 과연 우연이 맞는가? 이선우는 다시금 그 영화가 떠올랐다. 처음 써누를 만났을 때, 불현듯 스쳐 갔던 그 영화가. 그간 잊고 있었던 이질감이 다시금 뇌리를 관통했다.
 
남하연은 이선우의 전 애인이다. 대학 시절 처음 만난 둘은 애인으로서 오래 만났다가 헤어졌다. 헤어진 이유는 간단했다. 서로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 싫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둘 사이에는 더 이상 성애적인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았고, 마침 남하연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맡게 되어 결국 이별을 고했다. 사랑보다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는 그녀의 신념이었다. 이선우도 납득을 했고, 결국 둘은 그렇게 깔끔하게 이별을 했다. 그게 벌써 4년 전 일이다. 교제 시절 이선우는 빙넷에 남하연과 찍은 사진들을 몇 장 올렸었다. 그 당시에는 남하연도 빙넷 유저였다. 그 때문에 써누도 그녀를 아는 걸까. 써누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써누가 가지고 있는 ‘나’ 라는 정보 값에 대해서. 남하연을 보는 저 눈빛에 대해서. 써누는 정보를 입력함에 따라 스스로 습득하고 잇따라 발전해 나가는 학습 시스템이 내재돼 있는 로봇이다. 그 정보 값에는 감정도 포함이 되는 건가? 그럼 하연을 향한 나의 감정도… 이미 입력이 되어있으며, 추가로 본인의 감정이라는 도출 값까지 융합할 수 있는 건가.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건 그냥, 인간을 떠나서,
‘진짜 나와 똑같지 않나?’
 
이선우는 더 다가가지 않고 서 있는 그곳에서 둘을 보았다. 이선우에게는 내가 아니더라도 내가 있다는 것이, 저 광경이 너무나도 기이했다.
 
“아니 그러니까… 뭐? 얘가 로봇이고, 네가 선우라는 거지? 전혀 구분이 안 되는데, 아니 애초에 어떻게?”
“그러니까… 나도 모른다니까. 정말 하나도. 만든 건 SNS개발자. 얘는 그냥 폐기된 상품. 이게 내가 아는 게 다야,”
 
“야 말이 돼? 그 상태로 한 달을 같이 살았다고? 너 뭐 안전 불감증이야?”
 
카페로 들어간 셋은 창가에 앉아 이야기를 했다. 언성을 높이며 꾸짖는 남하연 때문에 남들이 보기엔 뭐 말다툼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일방적으로 혼나고 있는 거지만…
 
“아니 근데 정말로. 위험한 일 하나도 없었어. 애 말하는 거나 행동하는 것도 그냥 나 정도 수준이었고. 너 기계 공학자잖아. 봤을 때 뭐 느껴지는 거 없어?“
 
“기계공학자는 분석하는 거지 감각으로 느끼는 거냐.”
 
그렇게 말하면서도 하연은 써누의 팔목을 약하게 쥐고서는 올렸다 내렸다, 또 동공과 피부 조직 등을 관찰하였다. 카페는 사람이 없어 조용했고, 나지막이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만 이 적막을 채웠다. 전애인과 전애인을 닮은 로봇에 둘러싸여 있는 남하연은 이 분위기를 어색해할 법도 한데, 정말 순수한 호기심으로서 써누를 관찰하는 데에 몰입했다. 4년이나 지났는데도 안 변했구만. 이선우가 남하연을 보다 써누를 슬쩍 보았다. 써누와 눈이 마주치고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스멀스멀 올랐다. 아까 남하연과 써누가 대화하던 장면을 보았을 때 심장을 꿰뚫고 느껴졌던 뭔지도 모를 이 감정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내가 그저 써누를 바라보자, 써누도 말없이 그저 나를 바라보았다. 저 눈, 너무나도 인간적인 눈. 
 
하연은 그동안에 계속 써누의 팔을 관찰했다. 써누의 겉은 인공피부인데 단순 로봇 위
에 포장하듯 덧댄 것이 아닌, 미세한 조직 하나하나가 구현되어 있었다. 고르지 않게 나 있는 손톱을 보아 손톱도 자라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 대체 어떻게? 남하연의 연구 분야는 바이오 관련 시스템이었고, 그런 그녀에게 인간의 요소가 완전히 담긴 이 기계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기술력의 수준이었다. 이 몸 전체가 궁금했다. 뇌의 기능은 어떻게 구성돼 있는 건지도 궁금했다. 남하연은 써누의 팔을 내려놓으며 적막을 끝내고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얘 갈라보자.”
“뭐?”
“예?”
 
띠리릭-. 도어락 문을 열고 들어왔다. 뒤따라 들어와 신발을 벗는 써누를 보며 잠시 생각한다. 남하연은 당장이라도 써누를 갈라보고 싶어 했지만, 이선우는 일단 말렸다. ‘갈라보자’ 라는 말이… 너무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들렸으니까. 하지만 하연이 써누의 기술적 가치를 설명하며, 이선우 역시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그 역시도 종종 어떻게 이렇게 구현된 건지 감탄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일단은 며칠 후 하연의 개인 작업실에서 간단한 체크만 해보기로 타협했다. 가볍게 컴퓨터로서 부품 번호라던가, 프로그램을 먼저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안전 범위를 설정한 후 연구소에 가 분해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써누는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니 뭔, 보호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이선우는 다시금 시야에 있는 써누를 보았다. 아무렇지 않게 옷가지를 정리하고, 손을 씻는 써누를. 이선우는 자신이 느끼는 이 감정이 불안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 써누의 잠재된 기술력 때문도, 여전히 온전하게 존재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경계‘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인간으로서, 네가 로봇으로서의. 어떠한 경계가 없다면 나는 너고 너는 나잖아. 손을 씻고 나온 써누와 또 눈이 마주쳤다. 카페에서처럼, 나를 그저 바라만 본다. 아니 마치 나를 학습하고 있는 것 같다. 이선우는 그 끝없는 고뇌에 빠져들었다.
 
“선우야, 왜 불안해하는 거야.”
“뭐?”
 
대뜸 써누가 말을 했다. 예상하지도 못했던, 이상한 말을. 점점 이선우에게 다가오며,
“너는 곧 나지만, 나는 네가 될 수 없어. 네가 내 주인이잖아.“
기어코는 써누는 쇼파에 앉아 있는 이선우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모방작일 뿐이야.”
“안심해도 돼. 네 한마디면 종료되는 게 나야… 난 로봇일 뿐이야.“
 
그러면서 써누는 이선우를 올려다보았다. 이건 이선우가 예전에 남하연에게 사과할 때
하던 행동이었다. 무릎을 꿇고 올려다보는 것. 저 눈빛까지도. 분명 써누는 그 의도가 아니었겠지만, 이선우는 속에서 어떠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써누를 팍 밀치고는 말했다.
 
“그럼 팔 한번 잘라봐.“
“뭐?“
“증명해 보라고“
 
뒷 말은 이어가지 않았다. 진지한 눈빛으로 써누를 쳐다볼 뿐이었다. 써누도 이어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들은 것 같았다.
 
써누는 고개를 잠시 숙이더니, 왼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팔을 쭉 뻗었다. 그리고 이선우가 지켜보는 앞에서, 바로 그 앞에서. 팔의 관절을 잡아 힘을 주고는 한순간에 꺾었다. ‘딱’ 하고 나는 기계적인 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써누가 잡고 있던 손을 놓자 뽑힌 팔은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에 있는 써누의 팔을 본다.
더도 덜도 말고 기계 부품뿐이었다. 그에게서는 피가 나오지 않는다. 고통을 느끼는 듯한 표정도 없다. 그냥 주인인 내가 명령하니, 그에 따른 로봇의 모습이었다. 보이는 잘린 팔의 단면은 복잡하고 잔뜩 엉켜있는 전선의 모습이었으나, 이선우의 눈에는 깔끔하고 단순해 보였다. 그 단순함이 기괴했다. 그걸 보면서 이선우가 느낀 바는, 
‘역시 너는…’
 
써누를 바라본다. 팔이 잘린 이선우의 복제 로봇.
서로가 서로의 결점을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미안해… 불안했었어. 잠시.“
 
애초에 이 로봇에겐 결점이 없다. 오점조차 성공적으로 입력된 값이니까.
“나는 내 인생에 자신이 없었거든.“
 
그러니까 결점은 인간, 나에게 있는 것이고.
“그러니까… 문득 네게 뺏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거야.“
 
이 감정은
“근데 알겠어. 그럴 일은 없다는 걸.“
 
오로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네 주인이 아니야. 우린 친구야.“
너는 날 절대 이해 못 하겠지.
“네가 있어서. 덕분에 요즘 외롭지 않았어.“
 
그런 너의 완벽한 점이 곧 내 결점을 채워줄 수 있는 거야.
“진짜 미안해. 다시 한번, 잘 지내보자 써누야.“
 
너는 내가 될 수 없어.
“응 선우야“
 
이선우는 써누를 안았고, 써누도 웃으며 덩달아 껴안았다. 팔 끝으로 써누의 잘린 팔이 느껴졌다. 정말로 기괴했다. 너무나도.
 
 
#4 절정
 
 “아.”
“뭐야, 건우 또 뭐 부쉈어?”
“아이고, 아니에요 누나. 멀쩡해요. 근데 이거 뭐 중요한 거예요?”
“아~ 이거 그거야. 선우가 써누 팔 수리 부탁한다고 했던 부품. 내일 오기로 해서 급하게 준비하기는 했는데, 버전이 맞을지 모르겠네.”
“써누? 그게 뭔데요? 형이 뭐 또 키워요?”
 
“너 못 들었어?”
 
 
쾅쾅쾅. 고요하던 이선우의 집에 대뜸 문 두들기는 소리가 가격했다. 초인종 누르라니까… 또 반찬이라도 전해주러 왔나? 이선우는 들리는 소리에 바로 일어나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써누가 열어주겠거니 했던 탓이었다. 그러다가 또 써누의 부서진 팔과, 건우는 아직 써누를 모르지 않나? 하는 마음에 어기적 일어났다. 
“잠시만.”
 문을 열려고 하는 써누를 제지하고는, 이선우가 직접 문을 열었다. 
 
“형.”
문을 열자마자 건우와 눈이 마주쳤다. 평소와 다른 눈빛에 당황했고. 이선우와 맞춰져 있던 건우의 눈이 곧바로 이선우를 지나 옆으로 옮겨 갔을 때, 뒤늦게 그 시선의 끝이 써누라는 것을 알아챘을 때. 건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 진짜 있네.”
“야 너…”
 
 
“저거 뭐야?”
 
 이건우. 이선우의 동생이다. 다소 소심한 학창 생활과 다소 내성적인 대학 생활을 끝으로 사회와는 한걸음 멀어져 살아가는 형과는 다르게, 이건우는 늘 한걸음 앞서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이선우는 친구도 많고 선배도 많고 후배도 많고 아는 형 동생 누나 아주머니 아저씨 선생님 어르신, 그냥 매일에 사람이 넘쳐흐르는 사람이다. 그의 성격은 온순함과는 거리가 멀고 되려 불과도 같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센스와 자상함, 굳건함에 근처에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그 끌린 사람 중에는 이선우도 있었다. 이선우는 이건우를 멋있어 했다. 내 동생이 아니더라도, 사람 대 사람으로서 동경했다. 그의 선택은 늘 옳았고, 이선우는 늘 그런 믿음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선우에게… 이 상황은 조금, 사실은 많이 당황스러웠다.
“이 기계 새끼 당장 부수라니까? 뭐 하는 거야.”
“건우야 진정하고”
 
“아니 누나 진정하게 생겼어요? 아니 나만 이상해? 쟤가 뭔 줄 알고, 얼마나 위험할 줄 알고. 왜 그렇게 다들 가만히 있는 거야.”
“아니, 알겠는데 일단 건우야 심호흡.”
“아알겠어요 후… 하… 아니근데 형은!”
 
 
그렇게 들이닥친 건우와 뒤따라온 하연은 집 안을 온통 어지럽혔다. 물리적으로 어지럽힌 것은 아니고, 정신적으로 어지럽혔다. 이선우는 몹시 어지러웠다. 처음 써누를 보았을 때 건우는 연신 물었다. 이게 뭐냐고. 이선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써누가 ‘우리 동생’ 하며 건우의 이름을 부르자 건우는 펑 터졌다. 원래도 SNS같이 남들에게 세세한 개인정보 노출하는 것 별로 안 좋아했고, 내게 빙넷에 모든 걸 올리진 말라며 종종 경고하던 애였다. 남하연처럼 기계나 첨단 기술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정의에 더 중점을 두던 애였고. 그러니까 제 형을 기반으로 불법 복제된 복제 로봇을 탐탁지 않아 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선우가 느끼는 이 당황은,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형은 소름 안 끼쳐? 형이랑 완전 똑같잖아. 나조차도 지금 형이랑 써누인지 뭔지랑 헷갈려 죽겠는데.”
“….”
 
 방 안에 있는 써누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사실상 갑과 을은 이건우와 남하연이었다. 건우는 계속 질문을 던졌고, 이선우는 계속 회피했다. 그러면 하연이 중재하며 건우와 이야기했다. 그 안에서 이선우는 점점 작아졌다.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다. 할 대답이 없었다. 할 수 있는 대답이 없었다. 말문이 막혔다. 
건우는 계속해서 써누를 나와 격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내지는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하연이 연구 가치가 높다 말하자 그럼 하다못해 연구소 안에 가둬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하연도 이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듯 이 이후로는 둘과의 대화도 더 이어지지 않았다. 둘은 그저 이선우에게 대답을, 이 대화의 끝을 낼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선우는 내리 바닥만 보던 눈을 위로 올려 건우를 보았다. 이선우는 건우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알지만서도 복잡했다. 침묵 속에서 하연의 시선도 느껴졌다. 둘의 눈빛에서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한심한 사람인지. 
 
“형, 대답 좀 해봐…”
건우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더 낮아졌다. 
 
그래! 솔직하게 말할게. 써누 너희가 보기엔 위험하고 이상하다는 거 알아. 근데 내가 한
달 지나 봤는데 괜찮더라. 얘 위험한 거나 수상한 건 하나도 없어. 좋아 대화도 잘 통해. 너희에겐 내가 종종 밖도 나가고 사람도 사귀고 일도 하는 것처럼 꾸며 말했지만 사실 나 말이야 친구도 없고 대화할 사람도 없고 늘 외로웠어. 늘. 너희가 떠나고서는 한 번도 괜찮았던 적이 없어. 근데! 써누가 생긴 거야. 나랑 똑같으니까 상처받을 것도 없고 상처줄 것도 없어. 서로가 하고 싶어 하는 말과 이어질 말이 똑같으니까 아! 나 그동안 너무 행복했어. 드디어 내가 친구가 생긴 것 같았어. 그걸 넘어서, 드디어 나도 특별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어. 너흰 모를 거야. 건우 너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하연이 너는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사람이지. 너희는 내겐 너무 특별해. 나는 그 특별함이 너무너무 부러웠어. 가져보고 싶지도 않아! 그 특별함의 아주 조금, 단지 평범함이라도 경험해 볼 수 있다면. 늘 꿈꿔왔어. 그리고 그걸 써누가 이루어준 거야! 써누가 있으면 나는 나야. 아무도 몰라주던, 나조차도 몰라주던 내가 내가 될 수 있다고. 써누는 단순 로봇이 아니야. 나의 존재를, 내가 인간임을 깨워주는 애라고. 가져가지 말아줘! 얘가 없으면 나는 다시 이선우가 돼. 나는 가치가 없어진다고!
 
라고… 이선우는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말을 하기엔, 너무나도… 너무나도 초라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자면,
어쩌면 남하연은. 내게 왜 주저하는 건지 물어봐 줄 수 있었다. 어쩌면 이건우는. 써누가 신기하다며, 형이 하나 더 생겼다며 유쾌하게 받아들여 줄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써누를 만나자마자 하연과 건우에게 도움을 청하고, 연구 목적으로 가져가도 되겠냐는 남하연의 말을 흔쾌히 허락하며, 혹은 신고해야겠다고 말하는 건우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어쩌면, 써누와 나는 애초부터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써누가 산산이 조각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어쩌면.
 
 
#5 결말
 
 
생일은 늘 혼자 보냈다. 
 
독립도 하고, 연애마저 끝내자 같이 있을 사람이 없었던 건 당연했다. 물론 하연의 축하는 끊기지 않았으나, 굳이 만나지는 않았다. 생일 축하 문자는 총 4개가 왔다. 건우, 냠냐미, 하연이, 부모님. 나조차도 챙기지 않는 것을 챙겨주는 다정함에 감동을 받으며, 그냥 그렇게 끝나는 하루였다. 
 
“생일 축하해!”
 
써누가 터뜨리는 생일폭죽에서 나온 컨페티가 내 발치로 떨어졌다. 
 
“사실상 네 돈으로 산 거니까아… 온전한 내 선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거, “
써누가 꺼내 보인 케이크는 생크림이 없는 고구마 케이크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케이크… 
 
“뭘 이런 걸 준비했어…“
“받고 싶어 했잖아. 축하.“
“…내가 그것까지 빙넷에 올린 적이 있었나?“
“아니, 근데 그냥 알았어. 그리고 나도 축하해주고 싶었고.“
“하하, 근데 따지고 보면 너도 오늘이 생일인 거 아니야?“
“따지고 볼 거면 나는 제작일로 따져야지. 우리 초도 할까??”
 
써누는 웃으며 케이크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날은 몇십 년째 반복된 내 생일, 딱 그 하루였지만. 내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먹으며, 비록 같이 먹진 못해도 앞에서 지켜봐 주며. 웃으며, 함께하며… 특별한 날이었다. 그게 지금 생각난 이유는,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까.
 
건우는 계속해서 내게 말을 했고, 나는 여전히 주저하기만 하며 어떠한 답도 못 했다. 하연도 더 이상의 중재도 하지 않았다. 써누는 방 안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닫힌 방문을 그 언젠가처럼 힐끔 쳐다보았다. 건우는 이런 나의 시선을 알아채고서는, 다시금 아까 삭힌 울분이 차오르는 듯했다. 솔직히 말해서, 건우의 눈에는 내가 무슨 사이비에 홀린 가족처럼 느껴질 것이다. 저 로봇인가 뭔가에 홀려서, 그 어떤 위험도 자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마저 내어줄 것 같다고. 그렇게 느껴서, 그만큼 걱정해서. 
 
 건우는 늘 나를 걱정했다. 어렸을 때부터 형 혼자 다니지 말라고, 형 괴롭힘당하지 말라고. 자라서도 반찬 챙겨주고, 생일 축하도 해주고. 끊긴 지 오래였던 나의 지인 소식도 대신 전해주며, 자꾸만 사회 밖으로 튕겨가는 나를 붙잡아주었다. 내가 독립한다고 집에서 나왔을 땐, 아무리 건장한 남자 혼자라도 습격에는 장사 없다며 야구 방망이를 하나 집들이 선물로 주었다. 
“알지? 우리 가족은 형이 시체 되는 것보다 범죄자 되는 게 훨 나은 사람이야. 누가 쳐들어오면 주저하지 말고 이거 잡고 때려야 돼.”
 
건우가 방으로 들어가 그 방망이를 잡고 써누가 있는 문을 발칵 열어버린 것은 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연과 나는 그대로 멈춰버렸다. 야 너…! 하는 하연의 소리가 옆에서 들린 것도 잠시, 방 안에서 둔탁한 굉음이 들렸다. 써누의 팔이 뽑힐 때 난 소리와는 비교도 안되는 굵은 소리가. 
야구 방망이를 들고 갑자기 방문을 연 건우, 분명 그 방 안에 있을 써누. 그다음 이어지는 상황은 예측하기 쉬웠다. 하연은 놀라며 방 안으로 달려갔고, 나는 그저 서 있었다. 그저…  나무늘보처럼, 달팽이 거북이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내디디며 방으로 나아갔다. 당황한 하연과 숨을 고르는 건우가 어떠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으나, 먹먹해진 귀로서는 제대로 들리는 건 없었다. 
한 걸음, 써누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한 걸음, 써누의 손이 보였다.
시야는 오로지 바닥에 있는 써누에게로만 초점이 잡혔다. 그 외의 것들은 흐릿했다. 
써누는 부서졌다.  
 
더 이상의 써누는 없다. 아주 흐릿하게, 나는…
내 발치에서 굴러다니는 못들을 보았다. 수많은 회로와 전지… 써누의 부품들. 문득 떠올랐던 것은, 생일 케이크였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이선우~ 생일 축하합니다”
나와 똑같은 목소리가 불러주는 내 생일 축하 노래는 뭔가 좀 이상했다. 그래도 웃겼다. 바람을 후 불자 초가 꺼지고, 어두운 거실에서 어렴풋이 써누가 보였다. 써누는 웃고 있었다. 아주아주 활짝.
 
지금의 써누는 아무런 표정도 없다. 어떠한 움직임도, 없다. 그저 이렇게… 
 
저항을 했을까, 아니면 그냥 맞았나. 피할 수 있었는데도 맞은 걸까. 혹시 잘린 팔 때문에 막지 못한 걸까. 왼팔이 아려왔다.
 
마지막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감정을, 떠올렸을까.
써누의 비인간적일 만큼 인간적이었던 눈을 생각한다. 지금은 전원이 꺼짐과 동시에 사라져 버린 안광. 
사라진 써누…
 
단연코 방금 사라진 것은 단순 써누만은 아닐 것이다. 
고개를 들고, 창문으로 보이는 세상을 본다.
 
 
아, 
우리는 평생 이렇게 외롭겠구나.
 


공생불가존재 30203 김가현.docx
0.06MB

 

2024.10 / 당시 제출한 파일
 
문예창작 수행평가로 제출한 글.
원래는 매 수업마다 기승전결 하나씩 쓰는 거였는데 ㅎㅎ... 맨날 그 시간에 방과후 숙제 하느라고 미루다가... 제출 당일에 벼락치기 <? 로 몰아서 썼던 글이다. 그러다보니... 급전개... 긴 한데 ㅎㅋ
사실 양식만 맞춰서 제출하면 되는 거라 그냥 냈다 ><...
 
글쓰는 건 2학기 활동이고... 1학기 때 뭐 잡다하게 마니 했는데 그건 나중에 한번에 올려야징
 
봐주셔서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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